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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의]야설(野說)조선족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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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1.19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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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KBS>
강성범이 했던 개그 중 제일 재미있었던 것이 “저희 연변에서는 100년 묵은 호랑이는 호랑이 축에도 끼지 못함다. 고저 1000년쯤 묵어야 아~~ 조고이 담배라도 좀 피우겠구나 하고 했드랬슴다” 이런 류의 개그를 했던 연변 총각 때였던 것 같다. 15년도 더 되었다. 그랬던 그의 개그가 발전인지 퇴보인지를 거치면서 최근 호통 얍삽 개그로 바뀌었는데, 호통에서 웃어야 하는지 얍삽에서 웃어야 하는지 타이밍 잡기가 무척이나 힘들게 되었다.
연변 사람이라는 캐릭터로 성공한 사람은 강성범뿐만이 아니다. 연변 총각 전에는 연변 처녀 김지선이 있었고 영화 <댄서의 순정>에서 문근영도 연변 사람으로 변했던 적이 있다. 1000만 관객을 동원했다는 영화 <황해>는 거의 연변 사람이야기로 도배한 영화였다. 그리고 요즘도 아침이면 나오는 드라마(출근하면서 얼핏 봐서 제목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다)에서도 연변 사람이 나온다.
어느덧 연변 사람이 대한민국의 스크린에서 자주, 어쩌면 고정적으로 출연한다. 개그나 영화, 드라마에서는 별로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이미지로 출연하지만, 그마저도 뉴스에 비하면 양호한 수준이다. 뉴스는 연변 사람을 아예 부정적으로 다룬다. 일단 강력범죄면 거의 중국교포, 조선족 이야기다. 그런 기사만 골라내는지는 모르겠지만, 뉴스를 보고 있자면 이 세상의 “악의 축”은 연변인 것만 같다.
게다가 조선족과 연변 사람이 거의 동의어로 사용된다. 중국 내에서도 조선족과 연변 사람은 거의 동의어로 통한다. 자치주를 구성해 모여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 내 180만 명 남짓한 조선족 인구 중 70만 명 정도가 연변에서 살고 있다고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다. 그러나 크게 믿을 바는 못 되는 통계다. 오래된 통계일지도 모른다. 왜냐면 조선족이 한국에 30만 명 정도가 있다는 한국 측의 통계와 10만 명쯤 일본에 있다는 통계도 있으니까.
조선족과 관련된 많은 형사사건에서 피해자든 가해자든 그 주인공이 연변 사람인 것은 맞는 사실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을 경악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잔인했던 오원춘 사건 만은 예외였다. 사실 오원춘 사건을 접하기 전까지는 나도 연변 사람과 조선족을 거의 동일시했고, 조선족 거주 지역을 좀 더 확장해봐야 길림성, 흑룡강성, 요녕성에만 거주하는 줄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오원춘 사건의 추적보도가 이어지고 오원춘의 고향이 공개되자, 조선족의 분포가 내가 생각하고 있는 지역의 범위보다 훨씬 더 넓음을 알았다. 오원춘의 고향은 내몽골(지도에서 몽골국 바로 아래의 넓은 지역) 흥안맹(兴安盟) 이었기 때문이다.
출처 - 구글 지도
오원춘 경우는 특이한 케이스 일 수도 있지만, ‘조선족 = 연변 사람’이라는 등식은 성립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조선족은 넓은 지역에 분포돼 있고, 지역별로 일정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2.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
연변에는 90%의 조선족들이 전형적인 함경북도 말씨(사투리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사투리라는 말을 쓰고 싶지 않다. 중국어처럼 억양의 표기가 없는 우리말에 표준어는 있을 수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를 쓴다. 노 젓던 뱃사공은 다 산으로 가고 물은 마른 데다 오염까지 된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함경북도와 붙어있기 때문에 주로 함경도에서 이주가 이루어졌고 또 그래서 함경도 출신의 후손이 많다는 생각을 충분히 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였을 때 현대판 국경인 두만강이나 압록강으로부터 거리가 훨씬 먼 심양(요녕성), 목단강, 해림(흑룡강성)에 평안도 말씨나 경상도 말씨를 쓰는 사람들이 집중적으로 모여서 살고 있다는 점, 연변지역에도 90%를 제외한 10% 정도 되는 사람들이 변형된 경상도, 평안도, 전라도, 강원도 등 조선 8도의 억양을 두루 쓰고 있는 사실을 해석하기는 어딘가 석연치 않아진다.
아래는 내가 이곳에서 나이가 지긋하고 현황에 대한 판단을 제대로 하고 있다고 보여지는 사람들로부터 들은 말이다(복수의 사람들에게 들은 이야기다).
연변으로 한 명 두 명씩 모여들던 조선인들이 기근이나 전쟁과 같은 사건이 터질 때마다 조선 각 지역에서 대거 몰려왔다고 한다. 많지는 않으나 심지어 제주도에서 온 사람도 있었다고 하니, 조선 8도 거의 모든 지역에서 이주민 또는 난민들이 모여온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정상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몰려온 조선인들은 타지에서 힘들 때 서로 돕고 위로하면서 얼마 되지도 않는 인생을 보냈다, 고 했으면 좋으련만, 현실은 달랐다. 지금도 온역처럼 퍼지고 있는 지역갈등과 불신처럼 말이다.
조선과의 국경이 서서히 닫혀갈 60년대 중반에서 70년대 초반이 되자 연변지역에는 함경도 사람, 경상도 사람, 평안도 사람들이 크게 세를 형성했다고 한다. 당연히 그들은 지역별로 자신들만의 특징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고 익숙하지 않으면 뭉치게 되는 인간의 특성상 지역별로 뭉쳤을 것이다.
조선시대 내내 유배지나 정배지였던 함경도, 그만큼 양반의 도나 학문의 깊이를 바라기가 어려운 지역의 사람들, 이 글을 읽는 한국인들이 제대로 표현하지는 못할지라도 더 잘 알고 있을 경상도 사람. 경상도보다 더하면 더했지 절대 뒤지지 않는 평안도 사람. 모르긴 몰라도 같은 피난민이나 이주민의 처지이나 매일 패거리 싸움이라도 일어날 분위기였을 것이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법이라 했던가? 연변지역에 상대적으로 오래 거주한 함경도 사람들을 내쫓을 순 없었을 것이다. 결국 억센 함경도 사람을 이기지 못하고 평안도와 경상도 사람들은 새로운 지역을 찾아서 집단이주를 떠났다고 한다.
그렇게 도착한 첫 정착지역이 지금의 장춘지역(길림시, 교하시 부근, 잘 모르면 지도를 보면 이해가 쉽다)이였다.
출처 - 구글 지도
거기서 해피엔딩으로 끝났으면 좋으련만, 공공의 적인 함경도 사람이 싫어서 떠났다 해도, 경상도 사람과 평안도 사람이 서로 싸우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평안도 사람들은 경상도 사람들이 싫어 다시 그들을 등지고 대규모 이주를 시작했는데 최종 정착 지역이 현재 심양이라고 한다. 나머지 경상도인 일부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고, 일부는 중국의 식량 창고라고 불리는 흑룡강 지역으로 이주하여 정착했다.
그렇게 연변 지역은 함경도 사람들만 남게 되었고 장춘이나 흑룡강 지역에는 경상도 사람이 널려 있게 되었으며 심양 지역은 순수 평안도 사람들만 거주하게 되었다고 한다.
여시아문이다.
하나의 설일 수 있다. 이미 거주하고 있었던 사람들을 제외한 대규모 이주에 대한 가설일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누가 지어낸 이야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역으로 추적하여 보았을 때 어느 정도의 신빙성이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먼저 심양 지역으로 떠난 평안도 사람들을 보자. 그들은 지금도 무척이나 똘똘 뭉쳐 있다. 피부로 느낄 수 있을 정도다. 일례로, 90년대, 한국에 돈 벌러 가려고 하면 최소 아파트 2채는 팔아야 될 정도로 브로커 비용이나 수속 비용이 많이 들었다. 한 동네에서 어떤 집이 한국에서 돈을 벌어오면 그 돈을 다시 빌려서 다른 사람이 나가야 했는데, 떨어져 있는 자기 형제에게도 돈을 빌려주지 않는 평안도 사람들이 마을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줄 정도로 끈끈한 유대관계가 형성돼 있었다고 한다.
또한 평안도 사람들은 같은 민족인 연변 사람과의 통혼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중국 내 조선족과 이민족의 결혼은 축복받기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같은 민족인 연변 사람과 결혼을 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었을 뿐만 아니라 거래 자체가 적었고 지금도 그러한 관습이 이어지고 있다.
다시 경상도 사람들을 보자. 지역은 사람을 만드는 법이다. 장춘 지역에 주저앉은 경상도 사람들은 많은 경우에 연변으로 다시 돌아왔다. 장춘 지역도 평원 지역이기는 하나 땅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닌 데다, 한족들의 세가 너무 쌔 자리 잡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춘 지역의 경상도 사람들은 무척이나 강인한 성격을 가졌다.
하지만 땅이 비옥한 흑룡강 지역으로 더 뻗어 나간 경상도인들은 인심이 무척이나 후한 편이다. 쌀이 많아서 일수도 있다. 그리고 이들은 연변 사람과 잘 어울려 지내는 편이고, 통혼도 많이 한다.
쓰고 보니까 내가 연변 사람이라서 타 지역의 조선족을 폄하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겠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음을 말해두고 싶다. 1부에서 이주 3세대라고 적었으나 사실 외가는 이주세대를 알 수 없는 조선족이다. 어렸을 때 외할아버지에게 물어봤었는데 외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온 것 같다고 했던 기억이 있다. 어찌 됐든 본인의 성씨는 수원 최 씨다. 반면 친가는 조부모 세대가 평양 외곽에서 살다가 들어온 전형적인 평안도 사람이다. 그리고 아버지는 경상도 동네인 교하시(길림성)에서 살다가 연변에 들어온 사람이고 나는 연변에서 태어났다. 그러니 편견을 가지고 쓴다고는 생각지 말기 바란다.
2000년을 넘으면서 중국으로 들어온 30만 대한민국 국민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이 조선족과 왕래가 크게 없는 것은 그렇다 쳐도 자기네들 무리 안에서도 또 다시 지역별로, 또는 다른 부류로 나뉘어진다. 이처럼 이주지역에서도 나뉘어 노는 이 민족은 도대체가 어쩌려고 이러는지를 모르겠다. 그 바가지는 집에서도 새던 바가지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 나는 중국 삼국시대에 조식이 지었다는 칠보시를 이민족 모두가 죽을 때까지 달달 외워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七步诗 (칠보시)
煮豆燃豆萁(자두연두기)
콩대를 태워서 콩을 삶으니
豆在釜中泣(두재부중읍)
가마솥에서 콩이 우는 구나
本是同根生(본시동근생)
본디 같은 뿌리에서 태어났는데
相煎何太急(상전하태급)
어찌하여 이다지도 볶아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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